6월 3일.

[일기.]

독을 차고

김영랑


내 가슴에 독(毒)을 찬 지 오래로다.

아직 아무도 해(害)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

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.

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,


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

억만 세대(億萬世代)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

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

'허무(虛無)한듸!'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? 


아!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

어느 하루가 있었던가, '허무한듸!' 허나

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

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


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

막음 날 내 외로운 혼(魂) 건지기 위하여..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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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등학교 때 이 시를 읽고 참 깊은 감명을 받아서

"그래, 나도 독을 차고 살아가야겠다!"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.

하지만 고등학생 신분에 구할 수 있는 독은 거의 없었던 데다가 독을 먹으면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다-뭐, 자연사를 제외한 어느 죽음이 고통스럽지 않겠습니다만- 죽는다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생각을 고쳐서 그냥 마음 속의 독기로 만족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. 그리고 마음 속의 독기는 그 다음날부터 차근차근 간(肝)에 의해 해독되어서 수능 치고 난 다음에는 거의 완전히 혈액 속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. 그래서였을까요? 기간으로 따지면 거의 1~2개월의 짧은 시간이지만 참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.

여기까지 재미도 없고 교훈도 없는 이야기였습니다. 설마 제가 진짜로 독을 구했으려고요. 다만 저 마음 속에 독기를 품고 살아가야겠단 결심은 한동안 정말로 제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.

하여튼 저 시를 보면서 그 시절의 생각이 떠오르고, 동시에 지금 저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됩니다. 저는 다시금 독(毒)을 가슴속에 채웁니다.

//덧붙여.
rss옵션이 잘못되어 있어서 그간 rss로 제 블로그를 구독하시는 분들이 불편하셨을 겁니다. 이제 고쳤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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